미국법은 영국의 보통법(common law)의 전통을 따르면서 형평(equity)의 법리를 함께 계승하였습니다. 전통적으로 영국에서는 법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구제(legal remedy)를 받을 수 없거나 이것이 불충분할 경우 백성들이 불공평한 판결에 대해 왕에게 직접 상소를 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왕이나 대법관이 형평을 맞추어 주기 위해 별도의 명령을 내려 주면서 이것이 형평에 관한 법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형평에 관한 법은 구제수단에 있어서 금전적 보상이 일반적인 보통법과 달리 특정 행위를 강제하거나 금하는 법원 명령의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미국특허법에도 이 형평의 원칙에 기반을 둔 제도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 하나가 inequitable conduct, 즉 형평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한 제재입니다. Inequitable conduct는 특허침해의 혐의를 받는 자가 침해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주장할 수 있으며, 특허권자가 형평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했을 경우(예를 들어 특허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건을 제출하지 않는 등 정직과 선의에 관한 의무(duty of candor and good faith)를 위반할 경우)에 법원이 유효한 특허의 권리 행사를 막을 수도 있는 강력한 제재 수단입니다. 특허무효결정이 개별의 특허청구항별로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inequitable conduct의 경우 특허권자가 단 하나의 청구항에 대해서라도 형평의 원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할 경우 특허 전체가 효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 Regeneron Pharmaceuticals v. Merus N.V. 는 뉴욕 남부지방법원(이하 “뉴욕 법원”)에서 1심을 거친 후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U.S. Court of Appeals for the Federal Circuit)에서 항소심을 다루었는데 본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특허권자인 리제네론(Regeneron)이 과연 형평에 어긋나는 행위인 inequitable conduct를 했는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특허권자 리제네론은 DNA 벡터를 사용하여 진핵세포의 내인성 유전자와 염색체를 특정하고 변형하는 기술에 관한 미국특허 8,502,018호(이하 “‘018 특허”) 침해에 관한 소를 피고 메루스(Merus)를 대상으로 뉴욕 법원에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메루스는 inequitable conduct에 의한 특허권 행사금지에 관한 반소를 제기하였고 뉴욕 법원은 메루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메루스가 주장한 inequitable conduct의 내용인즉슨 특허권자 리제네론이 ‘018 특허의 특허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네 가지의 문서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허청을 기만할 목적으로 이 문서들을 은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문건 은폐에 관한 inequitable conduct를 입증하기 위한 요건은 문건의 중요도(materiality)와 기만의 의도(intent)입니다. 여기서 다시 중요도는 해당 문건이 “특허청이 알았더라면 특허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정도”로 결정적일 것을 요구합니다. 즉, “A 사건만 아니었더라면 B 사건이 반드시 일어났을 것”을 의미하는 but-for의 관계가 성립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입증의 정도는 preponderance of the evidence, 즉 성립할 개연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높음을 증명해야 하며, 청구항의 해석은 합리적 최광의의 해석(broadest reasonable construction)의 기준을 따릅니다.
한편 기만의 의도는 “특허권자가 특허청을 기만하기 위한 구체적인 의도”를 갖고 있었음을 특허침해의 혐의를 받는 자가 입증해야 합니다. 이 입증의 기준은 상당히 높은 편인데, 문건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 중요도를 알 수 있었으나 특허청에 제출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는 기만의 구체적인 의도를 입증하기에 충분하지 않고, 특허권자가 이미 알고 있었던 중요한 문건을 고의적으로 은폐하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명백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clear and convincing evidence)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직접적인 증거만 가능한 것은 아니고 그러한 정황을 밝힐 수 있는 간접적인 증거도 채택될 수 있습니다.
문건의 중요도에 관하여 뉴욕 법원은 일단 합리적 최광의 해석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특허권자 리제네론이 제출하지 않은 네 개의 문건이 ‘018 특허의 특허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결정적인 문서였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기만의 의도의 존재 여부를 별도로 판단하기 위하여 재판을 두 건으로 나누어 따로 재단할 예정이었으나 두 번째 재판일이 당도하기도 전에 특허권자 리제네론에 대한 제재(sanction)의 일환으로 리제네론이 미제출한 네 건의 문서에 기만의 의도가 존재한다는 불리한 추정(adverse inference)을 적용하였습니다. Adverse inference는 당사자가 법정에 출두하지 않거나 증거를 제출하지 않거나 구술을 하지 않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여 재판 진행을 어렵게 할 경우 비협조적인 당사자에게 불리한 결정을 판사의 직권으로 일방적으로 내려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리제네론은 재판 도중은 물론이고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법원의 명령을 여러 번 거스르며 불충분한 증거를 제출하거나 제출을 거부하는 등 비협조적인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예를 들어 리제네론은 특허침해에 관한 주장을 각 청구항의 요소 별로 나누어 주장을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며 청구항 기준으로만 구분된 차트로 대체하려 했으며, ‘018 특허의 고안과 실시에 관한 문서를 제출하는 명령을 받고도 일부 중요한 문서를 누락했고, 이를 시정하라는 여러 차례 법원의 권고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뉴욕 법원은 리제네론의 이러한 태도가 부적절함을 누차 지적하였으나 특허권자 리제네론은 시간을 끌 목적으로 법원의 명령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궁색한 변명을 둘러댔으며, 특허권자가 먼저 자신의 청구항 해석의 내용을 제출해야 한다는 규칙에도 불구하고 법의 헛점을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이에 반박하는 등 악질적인 행동을 보였습니다. 뉴욕 법원은 결정적으로 리제네론이 증거 공개(discovery)에 관한 다음 사항을 위반했음을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 뉴욕 법원은 리제네론의 특허권이 inequitable conduct로 인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고 판결하였으며, 항소법원 역시 뉴욕 법원의 판결문을 상당 부분 그대로 차용하면서 그 판결 내용에 명백한 오류(clear error)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이번 사건이 특히나 놀라운 것은 특허권자가 문서를 은폐할 의도가 있었는지를 법원이 실제로 가리지 않고 단순히 소송 과정에서 특허권자가 보여준 부적절한 행동에 대한 벌을 주기 위해 은폐 의도에 관한 추정을 적용하여 불리한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입니다. 미국법에서는 재판의 양측 당사자들에 대해 소송에 관련된 각종 문서와 증거를 공개할 의무가 부과되고 서로 검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Discovery라고 하는 이 절차에 있어서 증거를 은폐하거나 법원을 기만하려는 정황이 포착되면 재판은 이 제도를 오용한 측에게 급격히 불리해질 수 있으며 이러한 기만행위를 한 당사자뿐 아니라 이를 방조한 변호인에게도 큰 처벌이 가해질 수 있습니다. 본 사건의 특허권자는 뉴욕 법원이 gamesmanship이란 신랄한 표현까지 사용하며 비판한 온갖 꼼수를 부린 까닭에, 일반적으로 입증이 매우 곤란한 편에 속하는 “기만의 의도”에 관하여 그 시비여부를 제대로 가려 보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불리한 추정을 당하였습니다. 따라서 증거 제출 등에 관한 법원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소송의 가장 기본사항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특허법에서 역시 정보공개에 관한 의무(duty to disclose)는 매우 중요합니다. 악의적인 의도로 중요한 문건을 일부러 숨기려고 할 경우에는 오랫동안 실시를 하고 있던 특허도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계속출원 등으로 인해 하나의 포트폴리오 안에 여러 개의 특허가 모여 가족(family)을 형성하는 경우 하나의 특허출원 과정에서 파생되고 발견되는 각종 문헌들은 같은 가족에 속한 다른 출원에 관하여도 모두 특허청에 보고를 하는 등 정보공개의 의무를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