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U.S. Court of Appeals for the Federal Circuit)은 지난 16일에 Core Wireless Licensing v. Apple Inc. 사건의 판결문을 공표하였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청구항의 해석과 침해에 관한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특허권의 암묵적 포기(implied waiver)에 관한 사항이 특기할 만합니다.
Core Wireless(현재는 Conversant IP Mangement로 사명을 개명)는 무선통신 기술에 관련한 다수의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는 특허관리전문사업자(non-practicing entity)로서 과거에 노키아로부터 인수한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자사의 미국 특허 제 6,477,151호(이하 “‘151 특허”)와 제 6,633,536호(이하 “‘536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애플 사를 제소한 Core Wireless는 제1심에서 승소를 하였고 애플은 순회항소법원에 항소를 하기에 이릅니다.
특히 애플은 ‘151 특허의 출원인인 노키아가 이 특허를 출원할 당시에 관련 기술을 유럽의 표준협회인 유럽전기통신표준화기구(European Telecommunications Standards Institute; 이하 “ETSI”)에 제출하면서 이 특허를 공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암묵적 포기의 법리에 따라서 ‘151 특허에 대한 권리행사가 제한(unenforceability)된다고 주장했습니다. TDMA(Time Division Multiple Access) 통신방식에 관련된 ‘151 특허는 특히 이후에 ETSI가 도입한 GPRS(General Packet Radio Service) 서비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ETSI가 각종 통신사들로부터 GPRS 네트워크의 전송 딜레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제안서를 제출받고 있던 당시인 1997년과 1998년에 노키아 역시 표준 채택의 목적으로 자사의 GPRS 기술을 ETSI에 제출했습니다. 노키아가 이 기술을 ETSI에 제출한 시점은 1997년 11월 10일과 14일이었으며 노키아는 이와 동시간대인 1997년 11월 11일에 핀란드 특허청에 ‘151 특허의 신청서를 제출하였습니다.
1998년 1월에 ETSI는 결국 노키아의 안을 거절하고 경쟁사인 에릭손(Ericsson)의 기술을 표준으로 채택하였으나 에릭손의 제안기술 역시 노키아의 기술과 매우 흡사하였습니다. 노키아는 표준기술 선정에 실패한 지 4년 후인 2002년이 되어서야 ‘151 특허의 특허출원서를 ETSI에 공지하였습니다.
연방순회항소법원의 2011년 사건인 Hynix Semiconductor Inc. v. Rambus Inc.에서 표준을 제정하는 기구에 가입되어 있는 자는 그 기구가 제정한 표준을 따르는 제품에 대하여 특허권 침해에 관한 권리 행사를 포기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하이닉스 판례에 의하면 특허권자의 행위가 자신의 특허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의도와 부합하지 않아 해당 권리를 포기하였다고 합당한 추정을 할 수 있을 때(“conduct was so inconsistent with an intent to enforce its rights as to induce a reasonable belief that such right has been relinquished”) 특허권의 암묵적 포기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항소법원은 특히 이러한 암묵적 포기는 “(1) 특허권자가 특허 제정 기구에 공지의 의무를 가지며 (2) 특허권자가 그 의무를 위반했을 때” 일어난다고 하이닉스 판례에 명시한 바 있습니다.
마침 ETSI는 1997년 당시에 지적재산에 관한 조례를 정하고 있었으며 이 조례에 의하면 ETSI의 각 회원사는 인지하고 있는 모든 필수적인(essential) 지적재산에 관해 ETSI에게 공지할 의무를 갖도록 하였습니다. 특히 이 “필수적인”이란 용어에 관하여는 기술제공을 하는 회원사는 당 회원사의 기술이 채택될 경우 필수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지적재산을 ETSI 측에 공지하여야 하며 지적재산에는 “출원서(application)”가 포함된다고 적시되어 있었습니다.
애플은 ETSI의 전직 이사회장인 워커 박사를 증인으로 내세워 비록 노키아의 기술이 결국 표준으로 채택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러할 가능성이 과거에 존재했던 이상 노키아에는 공지의 의무가 있었으며 이는 등록특허뿐 아니라 공개되지 않은 특허출원서에도 적용된다는 증언을 받아내었습니다.
항소법원은 암묵적 포기를 불인정한 지방법원의 판결을 무효화(vacate)하면서 그 이유로서 (1) ETSI가 부과한 공지의 의무는 해당 기술의 표준 채택을 전제로 하지 않았음 (2) 등록특허뿐 아니라 미공개된 특허출원서의 내용 또한 공지 의무에 포함되었음 (3) 제삼자가 특허권자의 행동을 특허권의 포기로 인식할 만한 정황이 있어야 한다는 요구조건은 금반언(equitable estoppel)의 법리와 관련이 있을 지언정 암묵적 포기와는 거리가 먼 사안임 등의 이유를 들었습니다.
한편 법원은 암묵적 포기는 형평성의 법리(equitable doctrine)에 그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노키아 혹은 Core Wireless가 형평에 어긋나는 행위(inequitable conduct)를 통해 불공평한 이익(unfair benefit)을 실제로 취득했는지 여부와 노키아의 행위의 정도가 특허권의 행사를 제한할 만한 것이었는지(sufficiently egregious) 여부 등을 추가적으로 판단하여 암묵적 포기가 특허권의 행사 불능(unenforceability)까지 이르는지를 가리기 위하여 본 사건을 지방법원으로 송환(remand)하였습니다.
본 사건에서 보았듯이 표준제정기구에서 특허에 관한 공지의무를 부과하는 경우 이를 준수하지 않는 것이 관련 특허권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법적 강제력이 전혀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일개 사설기관의 조례나 규칙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특허권의 행사를 실제로 가로막을 수도 있는 무서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편 본 사건에서 이슈가 되었던 구체적 사안들, 즉 미공개 특허출원서에 대한 공지 의무가 있는지 여부라든지 “필수적인” 기술의 정의라든지 하는 개개의 사안들은 어디까지나 ETSI라는 하나의 특수한 기관이 정한 조례에 한정되는 내용일 뿐 전세계의 모든 특허제정 기구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님을 기억하고 표준기구에 가입을 할 때는 지적재산에 관하여 그 해당 기구에서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개별적으로 따져서 알맞게 대처를 해야 할 것입니다.